권력과 영광의 예술 II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인간에게 감명을 주고 인간의 마음을 압도하는 예술의 힘을 발견한 것은 로마 교회만이 아니었다. 17세기 유럽의 왕과 영주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권력을 과시해서 민중의 마음을 지배하려고 고심했다. 또 자신이 신권에 의해 받들어진 다른 종류의 인간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의 상징이 된 베르사유 궁전은 르네상스 형태로 장엄한 외관을 부여하고 조각상, 기념품 등으로 단조로움을 피했다. 만약 설계자들이 좀더 대담하고 비정통적인 수단을 더 활용했더라면 더 큰 성공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교훈은 다음 세대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교회와 프랑스의 성은 그 시대 상상력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모두 그들의 베르사유 궁전을 가지고 싶어했고 작은 수도원조차 보로미니나 베르니니의 설계의 화려함에 뒤지지 않으려 했다. 1700년을 전후한 시대가 건축에 있어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 성과 교회당들은 단순히 건물로서만 설계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예술은 환상적이고 인위적인 세계의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만 했다. 소도시 전체가 마치 무대 장치처럼 이용되어 들판은 정원으로, 시냇물은 폭포로 변형됐다.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 <빈의 벨베데레 궁>, 야콥 프란타우어 <다뉴브 강변의 멜크 수도원>.

이탈리아에서와 마찬기지로 알프스 북쪽에서도 미술의 각 분야가 장식의 북새통에 휩쓸려 들어가서 각 분야의 독자적인 중요성을 많이 상실했다. 17세기 전반기의 위대한 지도적인 화가들과 비견되는 거장은 앙투안 바토 한 사람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역시 궁정 사회의 축제에 적합한 배경을 위해 실내 장식을 디자인했다. 그러나 그는 실제 축제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실의 어려움과 자질구레한 일에서 동떨어진 자신의 환상적인 생활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상상의 공원에서 즐거운 야유회를 즐기는 꿈같은 생활로 숙녀들은 모두 아름답고 모든 사람이 번쩍이는 비단 옷을 입고 사는 세상이다. 이것은 로코코라고 알려져 18세기 초 프랑스 귀족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되었다.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받아 들뜬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의 유행을 말한다. <공원의 연회>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