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위기 (16세기 후반 유럽)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레오나르도 등은 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실제로 해버렸다. 그래서 그 이후 사람들은 더이상 발전할게 없다고 생각하고 모방에 전념했다. 그래서 이런 것이 잘못됐다고 여기는 후대 미술가들은 이 시대를 매너리즘 시대라 불렀다.

또다른 부류는 어떻게든 새롭고 기발한 것을 하려고 노력했다. 코레조의 제자였던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마돈나>가 예이다. 성모를 우아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나머지 목이 엄청 길어졌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희생하면서 까지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잠볼로냐 <머큐리 상>, 틴토레토 <성 마르코의 유해 발견>, <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 그리스의 엘 그레코 <요한 묵시록의 다섯번째 봉인의 개봉>. 이탈리아는 정확한 묘사에 익숙해서 틴토레토 같은 화가를 깠지만, 엘 그레코가 활동한 그리스나 스페인에서는 아직 중세 이념이 남아있어서 거부감이 없었다.

북쪽의 독일, 네덜란드, 영국 같은 나라의 미술가들은 이탈리아, 스페인 미술가들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생존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신교 교도들은 교회 안에 성인의 조각상과 그림을 두는 것을 우상 숭배로 간주하고 반대했다. 따라서 미술가들은 가장 큰 수입원인 제단화를 잃었다. 강경파 칼빈 교도들은 심지어 집을 꾸미는 것도 사치라고 반대했다. 삽화나 초상화 정도가 수입원으로 남았다. 이 시대의 위대한 화가로 독일의 한스 홀바인이 있다. <리처드 사우스웰 경>. 한스 홀바인이 영국으로 떠나자 독일 회화는 급쇠퇴했고 그가 죽자 영국도 마찬가지로 되었다. 종교개혁을 견딘 분야는 한스 홀바인이 다진 초상화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여기서도 매너리즘이 나타나고 홀바인의 간결한 양식 대신 귀족적인 세련과 우아함이 이상시되었다. 네덜란드는 나름 종교개혁을 잘 넘겼는데 전문적 특기를 개발해서 팔아서 가능했다. 자연 모방이 특기였던 플랑드르 화가들에게 전문화는 익숙한 것이었다. 북유럽 화가들이 주제를 어떤 종목 또는 부분으로 한정해서 의도적으로 개발한 그림, 특히 일상 생활의 장면들을 묘사한 그림들을 뒤에 가서 소위 ‘풍속화(genre painting)’라 부르게 되었다. 피터 브뢰헬 <시골의 결혼 잔치>.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북유럽 사이에 있어서 두 영향을 다 받았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