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시각 세계 (17세기 전반기 가톨릭 교회권의 유럽)

르네상스를 뒤이은 양식을 바로크라고 부른다. ‘고딕’이나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처럼 ‘바로크’도 조롱의 의미로 사용했던 말이다. 터무니없고 기괴하다는 뜻으로 그리스, 로마인들이 채택한 방법과 다른 식으로 고전 건축 형식을 차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단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고대의 엄격한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 엄청난 타락으로 보였다. 자코모 델라 포르타의 <로마의 일 제수 교회>의 이중으로 된 기둥, 아래층과 위층을 연결하는 소용돌이를 특징으로 하는 복잡한 형태. 특히 이 소용돌이 같은게 까임.

로마에서는 미술에 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풍조가 처음으로 생겨났는데, 주요 쟁점이 정반대의 수법을 사용하는 안니발레 카라치와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가 되었다. 둘 다 매너리즘에 진력이 났었지만 극복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카라치는 라파엘로의 단순성과 아름다움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성모>는 르네상스 그림처럼 구도가 단순하고 조화롭다. 하지만 빛의 묘사 방식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표현 방식은 바로크적이다. 카라바조는 추한 것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원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전통을 무시한다고 ‘자연주의자(naturalist)’라고 비난했다. <의심하는 토마>에서는 손가락으로 예수의 상처를 찔러보는데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그리고 아름답고 위엄있는 사도들의 모습에서 벗어나 이마에 주름이 깊은 평범한 노동자로 묘사했다.

로마는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는데 미술가들은 로마에 와서 최신 운동의 정보를 얻고 자신만의 양식을 발전시키곤 했다. 그런 사람 중에 귀도 레니가 가장 유명하다. 레니는 카라치파에 들어갔으며 라파엘로를 모방하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현대 미술가들은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라파엘로의 작품이 그의 성격과 예술관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지만, 레니는 원칙에 따라 그러한 화법을 선택한 것이다. <오로라>. 정해진 방법 같은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던 고전 미술과 구별하는 의미에서, 카라치와 레니,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공식화된 자연을 이상화하고 미화하는 방침을 신고전주의적 또는 아카데믹한 방침이라 부른다. 니콜라 푸생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클로드 로랭 <아폴론에게 제물을 바치는 풍경>.

북유럽에는 페터 파울 루벤스가 있었다. <성인들의 경배를 받고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전통적인 주제임. 같은 주제의 이전 어떤 그림보다도 많은 움직임과 빛, 공간감. <아이의 얼굴>, <자화상> 복잡한 기교도 없이 대담하고 섬세한 빛의 효과로 모든 것을 생기있게 만드는. 더이상 소묘적 수단이 아닌 회화적 수단에 의한 입체감. <평화의 축복에 대한 알레고리>

루벤스의 제자 안토니 반 다이크 <영국 국왕 찰스 1세>, <존 경과 버나드 스튜어트 경>. 사물의 질감과 표면을 표현하는데 있어 루벤스의 모든 기법을 터득했으나 스승과 달리 힘이 없고 우울한 분위기. 초상화 주문이 너무 많아서 자신이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조수가 다 그리는 안 좋은 선례를 남김.

카라바조의 자연주의 방침을 흡수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세비야의 물장수>. 나중엔 카라바조 수법의 집착을 버리고 루벤스와 티치아노를 연구해서 붓놀림의 효과와 색체의 섬세한 조화를 보여주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라스 메니나스>. <스페인의 펠리페 프로스페로 왕자>의 개를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약혼>의 개와 비교해보면 털의 자세한 묘사 같은 건 없고 인상만을 포착해서 그렸다. 이런 것이 나중에 인상주의자들이 그를 존경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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