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 (16세기 초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피렌체의 위대한 개혁자들은 색채보다는 소묘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를 그림 위에 덧붙이는 부가적인 장식으로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성모와 성인들>은 부드럽고 다채로운 색채들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또한 그는 인물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사실적이고 살아있는 것처럼 그릴 수 있었다.

조반니 벨리니는 베로키오,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등과 같은 세대로, 그 역시 유명한 친퀘첸토 거장들을 배출했다. 바로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이다. 중부 이탈리아의 화가들이 완전한 화면 구성과 균형잡힌 구도로써 그들의 그림 속에 새롭고 완전한 조화를 이룩했다고 한다면, 베네치아의 화가들이 색채와 빛을 그처럼 행복하게 사용하여 화면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 조반니가 보여준 모범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조르조네는 이런 영역에서 가장 혁명적인 업적을 이룩했다. <폭풍우>를 보면 인물들이 특별히 세심하게 그려진 것도 아니고 구도에서도 딱히 기교가 보이지는 않지만, 화면 전체에 스며 있는 뇌우의 섬뜩한 빛과 공기에 의해서 그림이 하나의 전체로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풍경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나름대로 진정한 주제가 되고 있는 거의 최초의 그림이다. 그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인물과 사물을 나중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 도시를 모두 하나로 생각했다. 어찌보면 원근법의 창안과 맞먹는 새로운 발돋움이었다.

조르조네는 이 위대한 발견의 결실을 얻지 못하고 너무 일찍 죽었다. 그 성과는 티치아노를 통해 얻게 되었다. <성모와 성인들과 페사로 일가>에서는 성모가 그림의 중심에서 이동했으며 두 성인을 이 장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으로 묘사했는데, 이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그림이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게 될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화를 깨트림 없이 오히려 그림을 생기있고 활기차게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티치아노가 빛과 공기와 색채로써 이 장면을 통일시켰기에 가능하였다.

티치아노가 그처럼 큰 명성을 얻은 것은 초상화 때문이었다. <한 남자의 초상, 일명 ‘젊은 영국인’>의 머리 부분을 살펴보면 그의 초상화의 매력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나 리자>와 같은 세밀한 입체감의 묘사는 없지만, 그런데도 신비하게 살아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권력자들은 이 거장에게 초상화를 그려받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그것은 티치아노가 실물보다 특별히 좋게 그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예술을 통해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술가들이 새로운 발견을 위해 정진한 것은 베네치아와 같은 중심지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북부 이탈리아의 파르마에 16세기 초의 가장 과감한 혁신가로 평가되었던 코레조가 있었다. <거룩한 밤>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첫눈에는 왼쪽의 복잡한 장면에 대응하는 군상이 오른쪽에는 없으므로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성모와 아기 예수에게 빛을 던저 강조함으로써 전체 그림은 균형을 이루게 된다. 코레조는 색과 빛을 사용하여 형태에 균형을 주고,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발견을 티치아노보다 더욱 잘 활용하였다.

코레조가 교회의 천장과 둥근 지붕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이후 수세기 동안 후대 화가들이 모방하게 된다. <성모의 승천>에서 그는 신도들에게 천장이 열려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하늘의 영광을 곧장 바라보고 있다는 환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빛의 효과를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그의 기술로 햇빛을 가득 받은 구름으로 천장을 채우고 그 구름들 사이로 천사들의 무리가 빙빙 떠도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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