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식의 확산 (16세기 초 독일과 네덜란드)

알프스 이북에서 이탈리아의 새로운 유행을 채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건축가들은 새로운 양식을 매우 피상적으로만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기존의 풍부한 장식적인 모티프에 약간의 새로운 고전적인 형식을 가미하는 식으로 새로운 지식을 과시했다.

화가와 조각가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건축에서처럼 원주나 아치 같은 분명한 형식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걸로 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미술가라면 미술의 새로운 원칙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그 원칙의 유용성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뉘른베르크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기법을 완전히 소화하고 돌아왔다. 그의 초기 작품인 <용과 싸우는 성 미가엘>은 요한 계시록을 묘사한 대형 목판화이다. 최후 심판날의 공포가 이렇게 강력하게 시각화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뒤러는 종래의 전통적인 포즈를 모두 버렸으며, 괴물들의 끔찍한 모습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그가 고딕 미술의 진정한 후계자임을 보여주었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얀 반 에이크처럼 자연을 끈기 있게 모사하려고 노력했다. <예수 탄생>에서 그는 낡은 농가를 대단히 조용한 인내심을 가지고 표현하였다. 농가는 대단히 목가적이고 평화로워 보여서 경건함 속에 성탄 전야의 기적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동판화에서 뒤러는 자연 모방을 추구한 이래로 고딕 미술의 발전을 총합하고 완성시킨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이탈리아 미술가들이 부여한 새로운 목적에 고심하고 있었다.

뒤러는 고전 미술의 이상적인 인체의 표현을 위해 노력했다. 라파엘로는 ‘어떤 이념’에 비추어 답을 구했었는데, 뒤러에게는 공부할 기회도 별로 없고 그를 지도해줄 전통이나 직관도 없었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인체를 과도하게 길게, 넓게 그리는 등 평생에 걸쳐 실험을 했다. <아담과 이브>는 그러한 연구의 초기 결과이다. 형태나 구도가 다소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가 울퉁불퉁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의 어두운 그늘을 배경으로 희고 섬세하게 모델링된 인체의 분명한 윤곽을 돋보이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는 남유럽의 미술의 이상을 북유럽의 토양에 이식시킨 최초의 진지한 시도에 감탄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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