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고들 한다. 나는 인간 중에서도 극단적으로 환경의 영향에 휘둘리는 인간이다. 보통 어떤 사람이 타인과 구분되는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이 된 데에는,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 사람의 의지, 옳다고 생각하는 바, 하고 싶은 것 등의 가치관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그런 가치관도 다 환경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성장해서 가치관이 확립된 후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하자.)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와 같은 주관의 기능이 누락되어 있기 떄문에 순수한 외부 자극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개성이라는 것도 거의 없을 수 밖에 없다. 아마 누가 내 친구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그 친구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몰라 걍 병신이야’라고 할 지도 모른다.

나의 이런 특성을 잘 악용하면 내 인생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너의 전재산을 바쳐라’ 같이 명백하게 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교묘하게 자극을 주면 진로 같은 건 아마 어떻게 될 것 같다. 사실 이미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난 별로 컴퓨터공학부에 올 생각이 없었다. 싫은 건 아니고 걍 아무 생각이 없었다. 누가 날 여기로 보낸거지? 는 그냥 점수 맞춰서 쓰라해서 갔다. 그렇다. 대학교 전공 선택 정도 조작하는 데에는 교묘한 자극은 커녕 단 한 마디면 충분했던 것이다! 가히 SDL(Stimulus-Driven Life)이라 할 만 하다. 그런데 생각하는 능력이 없이 외부 자극에만 영향을 받는다면, 나는 과연 인간으로써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길가의 가로수나 다름 없는 것 아닌가.

사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건 아닌데 흥미 유발용 개소리가 너무 길어졌다. 아무튼 나는 자극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금은 내가 일베충을 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혐오를 느끼지만 아마 내 주변이 다 일베충이었으면 나도 노무노무 거리고 있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정도의 내가 된 건 엄청나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의 나를 만든 자극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전공 공부 관련해서 가장 큰 자극은 단연 irc의 모 채널이다. 여기를 보고 있으면 엄청난 열등감과 조금의 의지를 얻을 수 있다. 근데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특별히 큰 영향을 미친 하나의 주자극은 생각이 안 나는 것 같다.

최근에 아는 형의 삶의 태도에 감복하여 본인의 삶의 패턴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친구가 있다. 이런 것도 나에게는 훌륭한 자극이다. 평소에 보편적인 훌륭함과는 거리가 있던 친구이기 때문에 더욱 훌륭한 자극이다(?) 새해도 되었는데 나도 진짜 인간답게 한번 살아봐야겠다. 일단 주적 아프리카.. 수년간 나는 그의 노예였다. 그동안의 반란은 모두 실패하였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본다. 그리고 트위터가 있는데 얘는 난이도는 별로 높지 않다. 카톡 쓸데없이 안 쳐다보기. 카톡은 아예 안 볼 수는 없는 게, 나는 내가 뭐 물어봤는데 상대가 대답이 늦으면 진짜 너무 답답하다. 내가 싫은 건 남한테도 하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 결국 나만 당하겠지.. 부들부들. 그리고 인생 내내 목표였던 운동, 독서, 피아노. 정식적인 부분으로는 짜증을 좀 줄이고, 나와 다름에 대한 이해심을 가지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도 다른 사람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친구가 초심을 잃지 않고 나에게 계속 자극을 제공하기를 빈다. 미리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근데 자극이 뭐지? 자극? 자극..?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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