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거울 (17세기 네덜란드)

프란스 할스 <성 조지 시민 군단 장교들의 연회> 유쾌한 분위기를 표현하면서 개개인도 실감나게 묘사한. <피터 반 덴 브루케 초상> 마치 스냅샷 같은. 규칙이 없는 듯 하면서 균형감 있는.

신교 하에서 초상화에 재능없는 화가들은 주문을 받을 생각은 포기해야 했다. 오늘날처럼 미리 그림을 그린 다음에 팔러 다니게 되었다. 잘 팔기 위해서 더욱 특수한 장르를 전문적으로 파게 되었다. 지몬 데 블리헤르 <해풍에 흔들리는 네덜란드 군함과 수많은 범선들>, 얀 반 호이엔 <강변의 풍차>은 클로드처럼 고상하고 품위있는 신전과 오솔길 대신 소박한 풍차와 들판을. 영국인들은 클로드 작품을 연상시키는 풍경이나 정원을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뜻으로 ‘픽처레스크’라고 불렀다. 그 이후 우리는 소박한 사물에도 이 단어를 적용하게 되었는데 바로 데 블리헤르나 반 호이엔 같은 거장들의 그림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렘브란트 반 레인. <자화상>에서 보듯이 그는 추한 모습을 감추려 하지 않고 성실하게 관찰했다. <얀 지크스> 할스의 초상화가 스냅샷 같다면 그의 초상화는 인물의 전생애를 다 보여주는 것 같다. <무자비한 하인의 이야기>는 선 몇 개로 회계사, 주인, 하인 간의 관계와 감정이 표현되어있다. 그는 그리스 사람들이 ‘영혼의 활동’이라 부른 것에 관해 신비스러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윗 왕과 압살롬의 화해> 그는 제스처나 동작 없이 감정을 잘 표현했다. 또 루벤스나 벨라스케스 못지 않게 번쩍이는 질감을 실감나게 묘사했고, 이들 보다는 밝은색을 훨씩 덜 사용했다. <설교하는 그리스도> 그는 에칭을 사용했다. 에칭은 동판을 힘들게 긁어내는 대신 위에 밀랍을 덥고 바늘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산성 용액에 넣으면 밀랍이 벗겨진 부분만 부식이 된다. 그 다음 이전과 동일하게 잉크를 칠하고 찍어내면 된다. 뷔랭에 의한 방법의 선과 에칭은 선은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는 카라바조의 교훈을 받아들여 아름다움보다 진실과 성실성을 중요시 했다.

대부분의 네덜란드 화가들은 유쾌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북유럽 미술의 전통을 따랐다. 중세의 세밀화에서부터 브뢰헬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전통의 흐름을 완성시킨 17세기 화가는 얀 반 호이엔의 사위인 얀 스텐이었다. <세례 잔치>

네덜란드 회화 중 가장 ‘전문화’된 분야인 정물화는 물건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배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가들이 관심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훌륭한 실험장이 되었다. 윌렘 칼프는 빛이 색유리 위에서 어떻게 반사되고 흩어지는지를 연구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 사수들의 조합의 뿔로 만든 술잔과 바다 가재 및 유리잔이 있는 정물>. 전문 분야를 파고들어가는 이런 화가들은 과거처럼 주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러한 거장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은 렘브란트보다 한 세대 뒤인 얀 반 베르메르 반 델프트이다. <부엌의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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