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혁신 I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14세기 까지는 유럽 각지의 미술이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해갔다. 이는 예술에서만 그런것이 아닌데, 예를 들어 중세의 학자들은 모두 라틴어를 할 줄 알았으며 파리 대학에서 강의를 하건 옥스포드에서 하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시민과 상인으로 구성된 도시가 봉건 영주의 성보다 점점 중요해지자, 각 도시들은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잃지 않으려고 단결하여 타국의 경쟁자에게 대항하였다. 미술가들도 중세였으면 어디서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작업했겠지만, 이제는 실력을 인정받고 배타적인 길드에 가입해야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 시대에는 지역마다 고유한 ‘유파’가 생겨나게 된다.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마사초의 뒤를 잇는 다음 세대가 그들의 발견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미술 후원자들이 주문하는 것들이 그 이전 시대와 그다지 다르기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을 실상에 응용하는 것이 항상 쉽지는 않았다. 피렌체의 건축가 알베르티는 재래식 주택과 브루넬레스키의 고전적 형식을 절충하는 것에 성공한 사람이다. 기존의 고딕식 구조를 변경하지 않으면서 아치와 벽기둥 같은 고전적 형식을 사용하였다.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 화가 프라 안젤리코도 새로운 업적과 전통을 조화시킨 예이다. 이렇듯 이 시대에는 고딕 전통과 근대적 양식의 절충이 전형적인 과제였다.

한편 피렌체 바깥에서는 안드레아 만테냐,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이 있다. 피에로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을 보자. 천사를 보면 원근법에 얼마나 숙달됐는지 알 수 있다. 또 매우 중요한 점은 그가 중세에는 없었던 빛의 처리를 더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발견들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중세에는 완벽한 구성을 만들기 위해서 화면 전체에 마음대로 인물을 배치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려다 보니 인물들의 배치가 어려워졌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이러한 새로운 문제, 즉 소묘에 있어서도 정확하며 구성에 있어서도 조화로운 그림을 그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비너스의 탄생>은 완벽하게 조화된 화면을 이루고 있다. 인물은 다소 현실성이 부족하게 그려져 있는데, 그럼에도 비너스의 아름다움 때문에 주목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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