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혁신 II (15세기 북유럽)

15세기 피렌체에서는 브루넬레스키 세대의 혁신으로 미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유럽의 다른 지역과는 분리되는 미술의 발전을 이룩했다.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차이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건축이다. 브루넬레스키가 고전적인 모티프를 사용하여 고딕 양식에 종지부를 찍은 반면, 북유럽에서는 한 세기는 더 고딕 양식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루앙의 법원성>은 ‘플랑부아양(타오르는 불꽃 모양) 양식’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고딕 양식의 최후 양식을 보여준다. 건물 전체가 변화무쌍한 장식물로 온통 뒤덮여 있다. 이렇게 고딕 건축의 마지막 가능성까지 소진해버렸으니 그 반작용이 뒤이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의 <킹스 칼리지 예배당>을 보면 단순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이미 보인다. 이 건물의 양식을 ‘수직 양식’이라 부르는데, 측랑이 없으며 장식적인 트레이서리와 곡선보다는 직선을 더 주로 사용하였다.

회화와 조각에 있어서도 북유럽은 반 에이크의 위대한 혁신에도 불구하고, 고딕 전통을 충실이 지키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프라 안젤리코가 마사초의 혁신을 14세기 정신을 지키면서 구사하였던 것 처럼, 북유럽에서도 얀 반 에이크의 혁신을 전통적인 주제에 활용한 미술가들이 있었다. 슈테판 로흐너의 <장미 그늘 아래의 성모>에서 현실적인 무대, 입체적인 인물들을 보면 그가 얀 반 에이크의 방법을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림의 주제와 정신은 고딕 양식에 가깝다.

그러나 이탈리아와 북유럽의 미술이 완전히 분리되어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장 푸케의 <성 스테파누스와 함께 있는 프랑스 샤를 7세의 재무 대신 에티엔 슈발리에>[…]를 보면, 조각같은 인물들이 현실적인 공간에 서 있는 방식은 그가 이탈리아 작품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물의 질감에 대한 관심을 보면 얀 반 에이크의 영향 아래에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15세기 중엽에 목판화술이 개발되어서 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싼 값에 그림을 인쇄하게 되어, 성상과 기도문이 들어있는 책자를 대량으로 배포할 수 있었다. 목판화는 그림을 인쇄하는 데 있어 대단히 조잡한 방법이지만, 윤곽의 단순함으로 오히려 내용 전달에 효과적이었다.

당시의 미술가들은 그들의 세부 묘사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그래서 나무 대신에 동판을 사용하게 되었다. 목판화는 보여주고 싶은 선 이외에 나머지 부분을 다 파내는 형식이고, 동판화는 반대로 선을 파내는 형식이다. 뷰린이라는 특수한 조각칼로 동판을 긁어 내고, 잉크를 전체에 골고루 바른 후, 표면을 깨끗이 닦는다. 그 다음에 종이를 동판 위에 놓고 세게 누르면 뷰린으로 파낸 선에 남은 잉크가 종이에 묻어 나오는 것이다. 마르틴 숀가우어의 <거룩한 밤>은 놀라운 세부 묘사를 보여준다.

목판술과 동판술은 순식간에 전 유럽에 전파되었다. 그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베끼는게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판화를 다른 아이디어와 구성을 빌려오는 견본책으로 이용했다. 이것이 북유럽의 중세 미술에 종지부를 찍는 큰 원동력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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