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의 정복 (15세기 초)

르네상스는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에서 이러한 재생이라는 관념이 확고해 진 것은 조토 이후의 일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대 로마 시대에는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었는데 게르만족의 침입 이후로 몰락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조토를 위대한 고대의 미술의 부활을 유도해낸 거장으로 칭송했으며, 그들에게 있어 그 사이의 시기는 그저 암울한 중간 시대, ‘중세’에 불과했다. 여기서 중세의 개념이 나왔고 현재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단테와 조토의 출생지이자 부유한 상업 도시인 피렌체에서 과거의 미술 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수장이 바로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이다. 그는 로마의 신전과 궁전의 유적을 조사하였고 이를 이용해서 새로운 건축 방법을 창조하였다. 그의 건축을 보면 고딕스러운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고전적인 신전과도 거의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열주나 박공 등 고전적인 양식이 쓰인 디테일을 보면 그가 고대 유적을 얼마나 주의 깊게 연구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또다른 위대한 업적은 바로 원근법의 발견이다. 단축법을 알고 있던 그리스 미술가들도 물체가 멀어질수록 수학적 법칙에 따라 작아진다는 사실은 몰랐다. 마사초의 <성 삼위 일체>는 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그림 중 하나이다. 피렌체 사람들이 마치 벽에 구멍이 뚫린듯한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또한 국제적 고딕 양식의 섬세하고 우아한 곡선과 세부묘사에서도 완전히 탈피하여 장엄하고 대단히 엄숙하다.

브루넬레스키 일파 중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도나텔로가 있다. 고딕 대성당의 엄숙하고 다른 세상의 존재처럼 보이는 조각상과 달리, <성 게오르기우스>에는 젊음의 혈기와 용기가 탁월하게 표현되어 있다. 눈썹의 세부 묘사 등을 보면 전통적인 모델에 전혀 의존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낡은 공식을 버리고 실제 모델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여 인체에 대한 탐구를 하였다. 또 그의 <헤롯 왕의 잔치>를 보면, 역시 고딕 미술의 우아함은 찾아볼 수 없으며 끔찍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피렌체 처럼 북유럽에서도 현실성을 추구한 미술가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화가 얀 반 에이크가 있다. 그의 <헨트 제단화>에는 타락 이후의 아담과 이브가 그려져 있는데, 나체를 전혀 미화 없이 적나라하게 그려 놓았다. 이 점에서 그리스, 로마의 미술을 버리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초기 르네상스 대가들과 대치된다. 또 비단옷의 광택과 보석의 묘사를 보면 그가 마사초만큼 국제 양식을 급진적으로 버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는 섬세한 세부 묘사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켜서 새로운 미술을 창조했다. 고딕 양식과 달리 그는 원근법을 적용해서 배경까지 세세하게 묘사하였고, 말의 털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끈기와 관찰로 그렸다.

또 얀 반 에이크는 유화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은 안료의 용매로 계란을 사용했는데(템페라라고 함), 그는 대신 기름을 사용함으로써 광택을 만들 수 있었고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었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약혼>을 보면 또다른 위대한 혁신을 볼 수 있다. 그림의 중앙에 ‘얀 반 에이크가 입회했노라’ 라고 써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약혼의 증인으로서 약속을 기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것이다. 거울을 보면 이 모든 장면이 반사되어 보이는데, 반 에이크 본인의 모습까지 들어있다. 마치 목격자가 확실하다고 인정하는 사진을 찍은 것에 비교할 수 있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미술가가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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