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

4월 16일. 뭔가 익숙한 날짜다 했는데 세월호(?) 분위기가 너무 좋은 영화. 하지만 이 감성에 완전히 공감하는건 나로선 무리.. 마지막에 양조위가 뜬금없이 나오길래 찾아보니까 화양연화와 2046을 봐야하는 듯.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더이상 짜낼 것도 없을 터미네이터인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늙은 T-800을 보며 추억도 살리고. 는 포스트 크레딧 씬님이 아직도 다음편이 더 있다고 합니다.. 타임 패러독스는 이미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몰랐는데 2편에서 T-1000 역이었던 로버트 패트릭이 나왔다고 한다. 찾아보니까 리얼 1초 정도 나오고 얼굴도 잘 안 보임;; 위플래쉬 교수 J.K.시몬스가 나와서 뭔가 웃겼다.ㅋㅋ 그 밖에 닥터후 11대 닥터 맷 스미스, 왕좌의 게임 에밀리아 클라크 등의 의외의 사람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새로운 규범을 찾아서 (19세기 후반)

어떤 사람들은 인상파 화가들이 당시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회화의 규칙들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현대 미술의 시조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상파 화가들의 목적도 르네상스 시대에 이루어진 자연의 발견 이래로 계속 발전해온 미술의 전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 역시 자연을 보이는 대로 그리기를 원했다. 그들이 벌인 논쟁은 그 목적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인상주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연을 완전히 정복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얼마 동안은 시각적 인상의 모방에 목적을 둔 미술의 여러 문제들이 다 해결된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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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변혁 (19세기)

‘전통의 단절’은 당시 미술가들의 생활과 작품 활동의 여건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 혁명은 장인 기술의 전통을 무너뜨려 기계 생산이 수공업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건축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수로 보면 19세기에 지어진 건물이 이전 보다 훨씬 많았지만 나름의 양식을 지니지 못하였다. 사업가나 시의원들의 취향에 따라 문은 고딕으로 건물은 노르만 성이나 르네상스 양식으로 해달라는 식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작품이 없지는 않았다. 찰스 배리와 오거스터스 웰비, 노스모어 퓨진 <런던의 국회 의사당>은 위엄 있어 보이면서 고딕 장식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변 환경과 잘 조화되어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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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단절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영국, 미국 및 프랑스)

지금까지 비록 유행이 바뀌고 미술가들이 다른 문제들에 부딪치게 되어, 어떤 사람은 인물의 조화로운 배치에 관심을 가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색채의 조화나 극적인 표현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으나, 대체로 회화와 조각의 목적은 전과 똑같았으며 누구도 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미술의 목적이란 원하고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 간에도 여러 유파가 존재하여 ‘미’란 무엇인가, 카라바조와 네덜란드 화가들과 게인즈버러 등이 명성을 얻었던 것처럼 자연을 능숙하게 모방하는 것인가, 혹은 라파엘로나 카라치, 레니, 레이놀즈와 같이 자연을 ‘이상화’할 수 있는 미술가들의 능력이 진정한 미를 좌지우지하는가 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격력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논쟁자들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으며 또 그들이 선호했던 미술가들 간에도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심지어 ‘이상주의자’들도 미술가란 자연을 연구해야 하고 나체화로부터 그림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으며 ‘자연주의자’라고 할지라도 고대의 고전적인 작품들이 결코 능가할 수 없는 최고의 미를 지니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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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시대 (18세기 영국과 프랑스)

17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유럽의 가톨릭 국가에서는 바로크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신교 국가들은 바로크 유행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채용하지는 않았다. 크리스토퍼 렌 경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로미니의 <산타 아그네스 성당>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유사한 면이 있지만 곡선이나 바로크적인 것들이 없어서 침착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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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영광의 예술 II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인간에게 감명을 주고 인간의 마음을 압도하는 예술의 힘을 발견한 것은 로마 교회만이 아니었다. 17세기 유럽의 왕과 영주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권력을 과시해서 민중의 마음을 지배하려고 고심했다. 또 자신이 신권에 의해 받들어진 다른 종류의 인간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의 상징이 된 베르사유 궁전은 르네상스 형태로 장엄한 외관을 부여하고 조각상, 기념품 등으로 단조로움을 피했다. 만약 설계자들이 좀더 대담하고 비정통적인 수단을 더 활용했더라면 더 큰 성공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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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영광의 예술 I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이탈리아)

17세기 중엽이 되면 이리아에서 바로크 양식이 완전히 발전하게 된다.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 교회인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산타 아그네스 성당>. 르네상스 형태의 정면 모습과 벽기둥. 양쪽 탑의 위층은 원형이고 아래층은 사각인데 이상하게 파괴된 엔타블레이처로 연결되어 있다. 거기다 입구 위 페디먼트가 타원형 창문틀을 만들기 위해 장식되어 있는 것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소용돌이 장식과 곡선이 건물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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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는 시각 세계 (17세기 전반기 가톨릭 교회권의 유럽)

르네상스를 뒤이은 양식을 바로크라고 부른다. ‘고딕’이나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처럼 ‘바로크’도 조롱의 의미로 사용했던 말이다. 터무니없고 기괴하다는 뜻으로 그리스, 로마인들이 채택한 방법과 다른 식으로 고전 건축 형식을 차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단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고대의 엄격한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 엄청난 타락으로 보였다. 자코모 델라 포르타의 <로마의 일 제수 교회>의 이중으로 된 기둥, 아래층과 위층을 연결하는 소용돌이를 특징으로 하는 복잡한 형태. 특히 이 소용돌이 같은게 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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