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단절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영국, 미국 및 프랑스)

지금까지 비록 유행이 바뀌고 미술가들이 다른 문제들에 부딪치게 되어, 어떤 사람은 인물의 조화로운 배치에 관심을 가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색채의 조화나 극적인 표현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으나, 대체로 회화와 조각의 목적은 전과 똑같았으며 누구도 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미술의 목적이란 원하고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 간에도 여러 유파가 존재하여 ‘미’란 무엇인가, 카라바조와 네덜란드 화가들과 게인즈버러 등이 명성을 얻었던 것처럼 자연을 능숙하게 모방하는 것인가, 혹은 라파엘로나 카라치, 레니, 레이놀즈와 같이 자연을 ‘이상화’할 수 있는 미술가들의 능력이 진정한 미를 좌지우지하는가 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격력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논쟁자들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으며 또 그들이 선호했던 미술가들 간에도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심지어 ‘이상주의자’들도 미술가란 자연을 연구해야 하고 나체화로부터 그림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으며 ‘자연주의자’라고 할지라도 고대의 고전적인 작품들이 결코 능가할 수 없는 최고의 미를 지니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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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시대 (18세기 영국과 프랑스)

17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유럽의 가톨릭 국가에서는 바로크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신교 국가들은 바로크 유행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채용하지는 않았다. 크리스토퍼 렌 경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로미니의 <산타 아그네스 성당>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유사한 면이 있지만 곡선이나 바로크적인 것들이 없어서 침착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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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영광의 예술 II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인간에게 감명을 주고 인간의 마음을 압도하는 예술의 힘을 발견한 것은 로마 교회만이 아니었다. 17세기 유럽의 왕과 영주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권력을 과시해서 민중의 마음을 지배하려고 고심했다. 또 자신이 신권에 의해 받들어진 다른 종류의 인간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의 상징이 된 베르사유 궁전은 르네상스 형태로 장엄한 외관을 부여하고 조각상, 기념품 등으로 단조로움을 피했다. 만약 설계자들이 좀더 대담하고 비정통적인 수단을 더 활용했더라면 더 큰 성공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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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영광의 예술 I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이탈리아)

17세기 중엽이 되면 이리아에서 바로크 양식이 완전히 발전하게 된다.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 교회인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산타 아그네스 성당>. 르네상스 형태의 정면 모습과 벽기둥. 양쪽 탑의 위층은 원형이고 아래층은 사각인데 이상하게 파괴된 엔타블레이처로 연결되어 있다. 거기다 입구 위 페디먼트가 타원형 창문틀을 만들기 위해 장식되어 있는 것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소용돌이 장식과 곡선이 건물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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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는 시각 세계 (17세기 전반기 가톨릭 교회권의 유럽)

르네상스를 뒤이은 양식을 바로크라고 부른다. ‘고딕’이나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처럼 ‘바로크’도 조롱의 의미로 사용했던 말이다. 터무니없고 기괴하다는 뜻으로 그리스, 로마인들이 채택한 방법과 다른 식으로 고전 건축 형식을 차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단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고대의 엄격한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 엄청난 타락으로 보였다. 자코모 델라 포르타의 <로마의 일 제수 교회>의 이중으로 된 기둥, 아래층과 위층을 연결하는 소용돌이를 특징으로 하는 복잡한 형태. 특히 이 소용돌이 같은게 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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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채 (16세기 초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피렌체의 위대한 개혁자들은 색채보다는 소묘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를 그림 위에 덧붙이는 부가적인 장식으로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성모와 성인들>은 부드럽고 다채로운 색채들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또한 그는 인물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사실적이고 살아있는 것처럼 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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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의 달성 (16세기 초 토스카나와 로마)

이탈리아 사람들은 15세기를 ‘콰트로첸토(400년대)’, 16세기를 ‘친퀘첸토’라고 부른다. 친퀘첸토 초엽은 이탈리아 미술에 있어, 또 전 역사를 통해서도 가장 위대한 시기였다. 이 시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코레조, 조르조네, 북유럽의 뒤러와 홀바인 등 수많은 거장들의 시대였다. 조토 시대에 이미 봤던 것처럼 도시들은 위대한 미술가들을 확보하고자 경쟁을 벌였고, 이는 거장들이 남들보다 뛰어나고자 노력하게 하는 큰 자극이 되었다. 북유럽에 비해 도시의 자유가 컸던 이탈리아에서 이런 자극이 더 강했고, 따라서 이탈리아 미술가들은 원근법의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 수학에 관심을 갖고, 인체에 대한 지식을 위해 해부학에 관심을 가졌다. 이렇게 야심과 자부심을 갖게 된 미술가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 수준으로 낮은 사회적 지위에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점은 역시 후원자들의 명성에 대한 집착에 의해 해소되기 시작한다. 명예와 특권을 얻고자 하는 수많은 궁정들이 서로 화려한 작품 의뢰를 위해 경쟁을 했기 때문에 거장들은 어느 정도 조건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군주가 미술가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었지만 이제 관계가 역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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