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시각 세계 (17세기 전반기 가톨릭 교회권의 유럽)

르네상스를 뒤이은 양식을 바로크라고 부른다. ‘고딕’이나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처럼 ‘바로크’도 조롱의 의미로 사용했던 말이다. 터무니없고 기괴하다는 뜻으로 그리스, 로마인들이 채택한 방법과 다른 식으로 고전 건축 형식을 차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단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고대의 엄격한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 엄청난 타락으로 보였다. 자코모 델라 포르타의 <로마의 일 제수 교회>의 이중으로 된 기둥, 아래층과 위층을 연결하는 소용돌이를 특징으로 하는 복잡한 형태. 특히 이 소용돌이 같은게 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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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채 (16세기 초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피렌체의 위대한 개혁자들은 색채보다는 소묘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를 그림 위에 덧붙이는 부가적인 장식으로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성모와 성인들>은 부드럽고 다채로운 색채들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또한 그는 인물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사실적이고 살아있는 것처럼 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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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의 달성 (16세기 초 토스카나와 로마)

이탈리아 사람들은 15세기를 ‘콰트로첸토(400년대)’, 16세기를 ‘친퀘첸토’라고 부른다. 친퀘첸토 초엽은 이탈리아 미술에 있어, 또 전 역사를 통해서도 가장 위대한 시기였다. 이 시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코레조, 조르조네, 북유럽의 뒤러와 홀바인 등 수많은 거장들의 시대였다. 조토 시대에 이미 봤던 것처럼 도시들은 위대한 미술가들을 확보하고자 경쟁을 벌였고, 이는 거장들이 남들보다 뛰어나고자 노력하게 하는 큰 자극이 되었다. 북유럽에 비해 도시의 자유가 컸던 이탈리아에서 이런 자극이 더 강했고, 따라서 이탈리아 미술가들은 원근법의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 수학에 관심을 갖고, 인체에 대한 지식을 위해 해부학에 관심을 가졌다. 이렇게 야심과 자부심을 갖게 된 미술가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 수준으로 낮은 사회적 지위에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점은 역시 후원자들의 명성에 대한 집착에 의해 해소되기 시작한다. 명예와 특권을 얻고자 하는 수많은 궁정들이 서로 화려한 작품 의뢰를 위해 경쟁을 했기 때문에 거장들은 어느 정도 조건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군주가 미술가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었지만 이제 관계가 역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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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혁신 II (15세기 북유럽)

15세기 피렌체에서는 브루넬레스키 세대의 혁신으로 미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유럽의 다른 지역과는 분리되는 미술의 발전을 이룩했다.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차이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건축이다. 브루넬레스키가 고전적인 모티프를 사용하여 고딕 양식에 종지부를 찍은 반면, 북유럽에서는 한 세기는 더 고딕 양식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루앙의 법원성>은 ‘플랑부아양(타오르는 불꽃 모양) 양식’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고딕 양식의 최후 양식을 보여준다. 건물 전체가 변화무쌍한 장식물로 온통 뒤덮여 있다. 이렇게 고딕 건축의 마지막 가능성까지 소진해버렸으니 그 반작용이 뒤이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의 <킹스 칼리지 예배당>을 보면 단순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이미 보인다. 이 건물의 양식을 ‘수직 양식’이라 부르는데, 측랑이 없으며 장식적인 트레이서리와 곡선보다는 직선을 더 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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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혁신 I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14세기 까지는 유럽 각지의 미술이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해갔다. 이는 예술에서만 그런것이 아닌데, 예를 들어 중세의 학자들은 모두 라틴어를 할 줄 알았으며 파리 대학에서 강의를 하건 옥스포드에서 하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시민과 상인으로 구성된 도시가 봉건 영주의 성보다 점점 중요해지자, 각 도시들은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잃지 않으려고 단결하여 타국의 경쟁자에게 대항하였다. 미술가들도 중세였으면 어디서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작업했겠지만, 이제는 실력을 인정받고 배타적인 길드에 가입해야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 시대에는 지역마다 고유한 ‘유파’가 생겨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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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의 정복 (15세기 초)

르네상스는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에서 이러한 재생이라는 관념이 확고해 진 것은 조토 이후의 일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대 로마 시대에는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었는데 게르만족의 침입 이후로 몰락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조토를 위대한 고대의 미술의 부활을 유도해낸 거장으로 칭송했으며, 그들에게 있어 그 사이의 시기는 그저 암울한 중간 시대, ‘중세’에 불과했다. 여기서 중세의 개념이 나왔고 현재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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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과 시민 (14세기)

13세기는 거대한 대성당의 시대였다. 이러한 거대한 건축 사업은 14세기 이후로도 계속 됐지만 더 이상 미술의 구심점은 아니었다. 도시들이 상업적으로 성장하면서 시민들은 점차 교회와 봉건 영주들의 권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귀족들도 도시로 이주하여 사치를 부리며 부를 과시했다. 과감히 일반화해 본다면 14세기에는 장대한 것보다는 세련된 것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14세기의 고딕 건축들은 장엄한 외관에 만족하지 않고 장식과 트레이서리를 통해 솜씨를 과시했다. 이것을 이전과 구분하여 장식적 양식(Decorated style)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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